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 하나님 나라 (서철원 교수)

 

신학도의 두 큰 과제

-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는일과 새사람을 입는일 -

 

교의 신학  서철원 교수

  지금 우리는 진리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에 관한 교리, 그리스도의 진리, 구원의 도리의 훼손에 대해 전혀 무관심 속에 살며 모든 것을 자기의 이해로 바꾸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도 우리의 상황이 얼굴이 반석같고 이마가 금강석같은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던 에스겔의 경우보다 우리에게 더 소망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영으로 우리 마음을 강권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이 섭리 때문에 우리 신학교가 세워졌고 우리합동 교단이 일으켜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의 아들의 복음을 전하게 사명을 지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바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명과 책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감없이 전파하고 가르치는데 있다. 지금 많은 설교자들이 매일 수없이 행해지고 있어도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는 별로 목격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의 필요의식은 더욱 절박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사람들의 생명이 살아나고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그런데 복음설교에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복음의 이해에 문제가 있거나 복음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신학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바로 배우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신학교 3년의 수학기간은 하나님의 전 경륜을 바로 알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전 경륜을 바로 알지 못하면 설교가 오류에 빠져들기가 십상이고 한쪽에만 치우친 설교를 해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교리들, 가령 기독론의 경우 이단적인 설교를 할 수가 있다. 그러니 우리 신학도들은 하나님의 전 경륜을, 즉 전신학의 체계, 즉 개혁신학의 체계를 바로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전경륜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이단적 가르침이 득세하게 될 때 이것을 바로 지적하고 깨우치며 회중을 보호할 수가 없다.

  지금은 모든 신학이 다 칸트 이후의 세계에서 행해지므로, 어떤 체계의 신학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유익을 가져오는냐로 그 진위를 말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현대 교회가 삼위일체 교리, 그리스도의 신성, 은혜론에 대하여 거기에 생사가 걸린 것으로 보지 않는다. 즉 교리적 무관심 속에서 교회가 각자의 유익만을 구하며 나가게 된 것이다. 또 기독교의 생명인 교리들에 대해 현대 교회가 무관심하게 된 것은 현세태의 반영일 것이다. 바울 사도가 지적한 대로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의 귀가 진리에 대해서는 무겁고 또 닫혀 있고, 비진리와 오류에 대해서는 혹하며, 또 자기의 이익을 위한 선생들만 두기를 기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때 우리가 보화인 개혁신학을 바로 알고 세상을 구원하는 복음을 힘있게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 개혁신학의 전체계를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의 전경륜을 알되 어떻게 그 경륜을 시작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셨으며, 또 그 경륜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개혁신학을 바로 분명하게 알아 다른 신화들, 가령 로마교회, 루터 교회, 복음주의 교회(알미니안 계통)의 신학들과 어떻게 구분되며 왜 개혁신학이 세상을 구원할 복음인지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왜 이들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대변하지 못하고 성경계시의 변용이며 퇴폐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들 신학 배후에 서있는 철학들이 무엇이며 비성경적 요소들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 그들의 오류를 지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로 그러므로 개혁신학만이 참 복음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현란한 현대 신학의 논의가 초래하는 미혹 속에서 개혁신학을 구원의 복음으로 정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무장을 갖추어야 비로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현금 한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목회자는 바로 개혁신학으로 무장한 군병들이다.

  또 하나님의 전경륜을 알아야 신구약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한국 교회가 구약을 주로 축복의 교과서로 선용하는 이유도 바로 하나님의 전경륜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약을 신약에 바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고 또 그에게서 어찌 성취되는지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교육은 하나님의 전경륜을 이해하도록 하는데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또 신구약을 그 원문으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전경륜을 바로 아는 일은 논리적 조직신학적 작업을 통해서이나, 그 교과서는 성경이다. 따라서 성경을 바로 알되 그 원문의 뜻으로 바로 알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성경원문에서 어떻게 그 뜻을 바로 나타내는지도 모르면서 자기의 해석을 표준으로 정통으로 고집하며, 자기의 사사로운 해석과 일치하지 않는 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무지몽매를 범하면 안될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전경륜을 바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해 신약에 구약을 바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자들이 정통연하고 남을 정죄 잘하는 세대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구약의 모든 율법이 성취된 줄을 모르는 자들이 구약의 성취된 부분들이 지금도 글자대로 타당한 줄 알고, 그런 세대주의적 해석을 정통으로 고집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세대론적 성경해석이 정통이 되었다. 자유주의적인 복음의 파괴도 무섭거니와 유대주의적 복음의 몰이해도 무서운 일이다. 개헉신학도는 이런 무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경 말씀을 바로 알기 위해서 신학도는 두 원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신학도가 가장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의 전경륜 혹은 개혁신학 체계전체를 잘 알도록 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은 성경 원어들을 잘 배워는 것이다. 신학도가 성경 원어들을 모르는 것은 군사가 실탄을 갖지 않은 것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도들, 특히 참 복음을 가진 개혁신학도들은 성경의 원어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원어공부와 함께 성경을 하나님의 전경륜에 비추어서 바로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모든 이단도 다 자기들의 성구들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의 오류를 바로 지적하고 배척할 수 있으려면 신구약을 바로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기독교회의 전통적인 성격해석의 원칙은 불명료한 부분들을 명료한 부분에 의해 해석하고 조명하며, 부분은 전체에 의해 해석하고 조명하는 것인데, 신학도는 항상 신구약을 연결해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구약은 신약을 그 해석의 문맥으로 갖고 있다. ,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 성취로 갖고 있다. 모든 구약의 역사와 제도와 예언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하여 진행되었고, 그에게서 성취되었다. 또 신약도 구약과 연결해서만 바로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약이 구약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법을 잘 배워야 할 것이다. 개혁신학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제껏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신학도는 하나님의 전경륜을 바로 알아야 한다는 명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 새사람을 입는 일이다. 오늘날 많은 신학교들이 참 그리스도인을 생산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사실이다. 신학교가 기도해도 회개의 기도는 없고, 열심히 기도해도 회개운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저 달라는 기도, 제목 기도 뿐이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여서 회개없이는 하나님께 갈 길이 없다. 매일 매일 회개할 뿐 아니라, 자기의 옛 사람을 벗어버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옛 사람을 끊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새 사람을 입지 않고 성령의 능력을 말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지금처럼 성령의 능력을 입는 것이 절박한 때가 다시 없다. 그러나 회개없이 성령의 인도를 좇아 살고 그 능력을 입을 길은 없다. 자기를 괴롭히는 옛 사람의 법을 끊어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 옛사람을 벗는 일은 우리의 종교적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죄만을 열거하고 애통하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된다면 회교도가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성화되고 불교도들이 더 성화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늘 회개 기도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회개와 옛사람을 벗는 일이 주의 은혜로만 이루어진다. 즉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의 권세에 호소해서만이 이루어진다.

  어떠한 조도 그리스도의 피에 호소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는 법이 없다. 또 그의 피에 호소해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 뿐만 아니라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일은 결단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에 호소해서, 혹은 그 권세를 의지함으로만이 가능하다. 그냥 회개만 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 회개와 옛 사람을 벗는 일도 복음을 바로 알고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에 호소해서 그 권세로 자기 옛 사람을 죽이고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세대가 필요로 하는 말씀의 봉사자는 옛사람을 벗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된 새사람을 입는 자이다. 이렇게 하기 전에는 성령의 능력을 기대할 수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성령의 지배가 다시없이 요청된다. 엘리야의 능력의 갑절 이상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능력입는 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를 믿고 적용하는 길밖에 없다. 성령지배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와 분리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신학교가 그리스도 안에 새로워진 종들을 생산해 낼 수 있다면 우리 학교는 그 소임에 있어서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신학만 가르쳐서는 허사를 경영하는 것 뿐이다. 속은 그대로이고, 겉만 치장한 교역자들은 다 사기꾼들일 것이다.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생산만이 한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 신학교들이 그 소임 수해에 실패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변화가 없고 한국 현실의 변화가 없다. 사람이 달라지지 않고 사회가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신학도들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져야 한다. 이일에 전력해야 할 것이다. 은혜로 옛 사람을 벗어버릴 때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은 성령의 능력을 입은 복음의 사역자들을 갈구하고 있다. 이 일만이 한국교회와 한국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여러 신학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는 일과 새 사람을 입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할 것이다. 이 두 일의 성취를 위해 여러분은 부름받았고 우리 신학교는 세워진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 두가지를 이루면 여러분은 부름에 합당한 자들이 되거니와 그렇지 못하여 한국교회를 현재대로 방치해 두면 그렇게 해서 멸망해 간 자들의 피값이 여러분의 손에서 욕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주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말씀 곧 우리의 개혁신학을 바로 알뿐 아니라 그 복음에 합당한 자들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