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 사상

    (언약적 구속사로 본 성경 계시역사)

                                                                                                서철원 교수(총신대신대원 역사신학)

1. 들어가면서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단히 성경을 공부하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신앙과 생명의 도리로 붙잡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해야 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 때문입니다(딤전2:4). 물론 여기서 모든 사람이란 인류 전체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선택하기로 예정하신 당신의 백성 모두의 구원을 제한적으로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결코 보편 구원론적 관점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에 근거한 제한구원(limited salvation)을 강조합니다. 예수라는 이름 속에서 이런 사실이 극명하게 확인됩니다. 1:28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백성을 찾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6:37, 19:10) 성육신의 방식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가 되시는 분입니다(2:6-8).

이런 이유로 합당한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은 바른 계시관의 정립에서 비롯됩니다. 곧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고 들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철저히 근거를 두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10:17). 때문에 청중 모두가 공감하는 수준 높고, 깊이 있는 설교를 제아무리 은혜롭게 선포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의 본문이 말하는바 하나님의 본의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계시의존적 설교와는 무관한 자의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설교에 불과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청중을 즐겁게 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과는 관계도 분깃도 없게 된다고 성경은 엄히 경고합니다(7:21-23, 10:2-3). 문제는 사람의 관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천상적 시각 말입니다. 따라서 본문이 말씀하는 천상적 의미를 세상적 관점과 질서 속에서 접근하게 될 때, 거기에는 자의적 해석과 편의적인 적용만이 난무할 뿐입니다. 그것은 넓은 길의 신앙관일 수는 있어도 결코 좁은 길의 신앙여정과는 무관합니다. 그 결국은 사망과 생명, 그리고 심판과 구원만큼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뿐입니다.

이와 관련해 성경을 일컬어 하나님의 자기 계시서(啓示書)라고 말합니다. 이는 창세전 영원하신 목적과 작정으로서 세상만사와 만물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오직 성경을 통해 계시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중 하나님의 계시의 핵심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구속의 은혜에 집중됩니다. 이런 사실은 뱀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죄의 문제(2:17, 3:6)여자의 후손언약’(3:15)의 당사자인 예수 그리스도(4:4)의 대속적 사역을 통해 해결됨으로 당초 하나님의 창조언약으로서 문화명령(1:28)은 지속적으로 성취를 향한 길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계시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속(救贖, redemption)사역에 집중될 때(5:39, 딤후3:15-17), 계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성경계시의 총화(總和)를 하나님 나라 사상에서 찾습니다.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말입니다. 이런 사상은 역사의 종국에 가서 마침내 실현될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도래에서 성취의 절정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계시에 무지하거나 왜곡 및 곡해현상은 사이비적 기독교 신앙과 교회 및 목회에로의 귀결이 불가피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나와지는 종교성이 이를 적극 부추기기 때문입니다(1:21-23). 결과는 우상 숭배적 신앙관의 형성입니다. 상황이 이럴 진대 열심을 내면 낼수록 사태는 더욱 악화일로를 치닫게 될 뿐입니다. 거기에 분명히 유사기독교의 모습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바 정당한 기독교 신앙관은 찾기 힘듭니다. 불법적(7:21-23)이고 불복종적(10:2-3)인 자의적 숭배 신앙만이 난무하게 됩니다. 바른 성경공부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이런 사실에 근거해 강력히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며, 성경계시의 총화가 무엇인 지를 바르게 아는 일은 바른 신앙관 형성의 척도가 될 만큼 중요합니다. 그것은 신앙의 목적 곧 구원의 이유와 바로 직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위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로서의 천국사상이 성경이 말씀하는 총체적 계시관의 궁극적 목표인 사실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시민으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친 백성들은 범사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사역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아 살아가야 합니다(6:33). 이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추구와 구현을 위한 삶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요 제일 된 목적이라고 설파합니다(12:13).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삶의 실상이 궁극적으로 선악 간에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에 의한 최종적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12:14, 고후5:10, 9:27, 20:11-15).

이제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바 하나님 나라 사상이 성경계시의 총화인 사실의 정당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총체적인 계시의 절정인 하나님 나라 사상은 공교하게 지어낸 것이 아닌 성경 자체가 자증하는 객관적인 관점이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신앙으로 수납하고 실제적인 삶의 가치관과 목표로 삼아 살아가는 것을 통해 여기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신분과 그 나라에 소속된 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질을 여기서부터 맛보며 확신하면서 살아가는 실제적 삶의 경험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그래서 현세와는 단절된 사후세계에 속한 나라(that world)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예비적으로 맛보며 체험하며 이루어가는 현재 진행적(this world, 12:28, 17:20-21, 13:31-33)이며 동시에 미래지향적(17:22-24, 22:14-18, 25:31-33)인 이중적 국면을 띠고 있는 나라입니다.

먼저, 다니엘서 2장에 소개된 느부갓네살 왕의 꿈 내용을 다니엘이 해석하는 내용 속에서 하나님 나라 주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2:31-46). 거기에서 각기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상호 깊이 연계돼 있는 두 종류의 꿈 내용을 접하게 됩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큰 신상과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은 그래서 신적기원에 의한 뜨인 돌에 관한 꿈 내용입니다. 문맥을 통해 전자는 인간의 통치역사를 상징적으로 묘사합니다. 후자는 신적기원에 의한 하나님 나라를 표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두 나라의 정체성은 각기 적대적인 성격을 띠면서 부단히 충돌합니다. 결국 뜨인 돌에 의해 큰 신상은 파괴됩니다. 최종적으로 멸망당합니다. 그리고 뜨인 돌로 말미암는 신정왕국 곧 하나님 나라가 마침내 인간통치의 세상나라를 대치합니다. 이는 세상역사의 본질이 하나님의 구속사인 사실을 명백히 증거하는 것을 통해, 세상역사의 종식과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도래란 신학적 명제를 동시적으로 시사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성취되는 현장이며 무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역사를 방편삼아서 하나님의 창세전 영원하신 목적과 계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 가십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성취에 모아집니다. 성도의 모든 삶이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적극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성경의 편집방향성이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도록 구성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66권의 처음 책인 구약의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고 선언합니다.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으로서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가리킵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듯이 천지 곧 우주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 말입니다(3:4). 그런데 계21:1을 살펴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와 관련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고 기술합니다. 이는 창1:1에서 언급하고 있는 태초의 천지창조사역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일컫는 종말론적 재창조사역으로 갱신, 확장되고 있음을 명백히 시사하는 내용입니다(벧후3:10-13, 19:28, 65:17, 66:22). 다시 말해 처음부터 이 세상(this world)의 창조사역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되고 있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that world)의 건설을 향해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전() 우주적 경륜(universal economy)을 다니엘서 2장에 소개된 느부갓네살 왕의 꿈 해석 속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공생의 사역의 중심사상이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에 집중됩니다. 곧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도래사상 말입니다. 이런 사실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선언(宣言) 속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4:17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본문에서 천국이 가까왔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본격적인 사역 속에서 이미(already) 이 세상에 도래해 역사하고 있는 현재완료진행형적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권세와 통치를 가리키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12:28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7:20-21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뿐만이 아닙니다. 2:10에서는 한 중풍병자가 죄 사함 받는 사실을 소개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현재적으로 발휘되고 있음을 분명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논지들이 종합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한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왕적 통치능력이 현재적으로 역사되고 있다는 사실에 모아집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각종 이적기사와 병자의 치유 및 축사(逐邪)사역, 그리고 천국복음의 증거와 죄사함의 권세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으로 도래해 역사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명백한 표적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중심주제는 단연 하나님 나라 사상에로 귀결됩니다.

넷째로, 소위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6:33)을 천국백성들이 세상 속에서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신앙적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설파합니다. 이는 앞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4:17)고 선포하시는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할 관점이기도 합니다. 곧 하나님 나라 사상이야말로 성도들의 존재이유와 추구할 삶의 궁극적인 목표요 가치관이란 사실을 강조함에 다름 아닙니다.

다섯째로, 동일한 산상수훈 속에서 특별히 기도문제와 관련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6:9-10)에 대해 집중해 기도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도래한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실질을 맛보며 체험하는 삶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적극 소망함으로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의 중심이 자신의 현세적인 목적달성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에 치우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 곧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실현이라는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기도에 집중되어야 함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삶의 성격과 방향성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구현’(고전10:31)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성경의 본의(本意) 또한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구현을 지향하는 삶이란 본질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삶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될 것이 확실하기에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 우주적인 경륜을 바르게 인식하고 신앙하는 데서 나와지는 자율적 순종의 삶 곧 말씀의 통치를 적극적으로 받아 누리는 계시(啓示)의존적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여섯째로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역 안에서 유대인과 더불어 새로운 피조물로서 한 새 사람, 곧 한 몸을 이룸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공동체적으로 이루게 되었음을 논술합니다(고후5:17, 2:14-16).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는 본질에 있어서 천상적 보편의 교회를 지향함으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새로운 신분의 소유자들임을 강조합니다. 1:13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렇습니다. 지상의 성도는 본질에서 이미 천상의 나라를 기업으로 소유한 천국백성들입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3:20).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구속사역 안에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합돼 미래의 영광을 현재적으로 이미 소유한 자들로 성경은 설명합니다(2:6). 성도의 현재적 삶의 성격을 현재적 하나님 나라에 소속돼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를 적극 받아 누리는 천상적 삶으로 간주해 설명하는 이유가 이런 원리에 근거합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성도들은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명령을 생명의 도리로 받드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선양과 확장과 종말론적 실현이라는 궁극적 명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친 백성들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상의 진술들을 통해 성경이 제시하는 주제들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세부적인 주제들을 총괄하는 단일한 주제는 단연 하나님 나라 사상에 집중된다는 사실에 달리 이견(異見)이 없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총체적인 주제는 하나님 나라 사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 사상이 성경 전체의 역사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를 요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관을 전통적이 아닌 성경적으로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는 전통적이고 유전적인 신앙관은 그것이 제아무리 기독교적으로 치장되었다 할지라도 본질에서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헛된 경배로 판정되기에 결과적으로 불법적이고 불복종적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7:6-8, 7:21-23, 10:2-3, 딤후3:15-17, 딤전2:4, 요삼4, 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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