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사역에 대한 신학적 성경적 기초들

 

(*아래 내용은 풀러신학교에 제출한 논문(서정복)의 일부를 발췌한 것임)

우리가 집 한 채를 짓는데도 분명한 설계도,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도 지상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말씀 하시면서 성경을 통해서 분명한 청사진을 보여 주셨다. 다만 목회자들이 성경적인 교회관에 의한 분명한 목회철학이 없을 때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참으로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주신 교회의 청사진에 의한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그것은 필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모든 목회자들의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목회사역에 대한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문제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답을 제시함과 아울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회의 본질을 재정립,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본 연구를 통해서 목회자의 의식구조가 변하며 바른 목회철학을 정립하여 주님께서 의도하시는 거룩한 교회를 이루며,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아름답게 쓰임 받는 사역자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1절 목회의 신학적 기초

1. 교회란 무엇인가?

(1) “교회라는 말의 뜻

구약성경에서는 교회를 말할 때 두가지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는 카할(kahal)이고, 다른 하나는 에다(eda)이다. ‘카할은 구약에서 모두 123회나 사용되었는데 이 낱말은 모으다, 소집하다, 부르다라는 동사 에서 나온 낱말로 본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장정들로서 전쟁에 소집된 무리를 말한다(49:6, 22:4, 삼하20:14, 대하20:5). 이 낱말은 주전 3세기경에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LXX)에서 102회 정도 에클레시아(교회, 회중)’ 로 번역되었다.(강성열,“구약성서의 교회론” [교회란 무엇인가?] 한국장로교출판사,1999, p15). 구약에서 카할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을 때 호렙 산 위에서 하나님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을 말한 경우일 것이다(4:10, 9:10, 10:14, 18:16) 이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 가운데서 선택하시고 계약을 맺고 약속함으로써 친히 이끌어 주신 역사적인 공동체를 의미한다(이종성, [교회론] ,,서울;대한 기독교 출판사,1989, pp30-31)

구약에서 147회나 사용된 에다카할보다 택한다는 뜻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에다70인 역에서 대부분 쉬나고게(synagogue)로 번역되는 것으로서 쉬나고게오다혹은 함께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다.(12:3,6, 33:7, 14:1, 20:1, 왕상12:1). 이 말은 유대인의 종교집회나 혹은 그들이 공 예배를 위해 회집하는 건물을 가리켜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4:23, 13:43, 2:9, 3:9). (이종성,교회론, 서울;대한기독교 출판사1988, p20)

신약에서는 교회를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가 두 가지가 있는데, “---으로부터 밖으로 불러 내다라는 뜻의 에클레시아이다. ‘에클레시아는 일반적으로 교회로 번역되었지만(16:8, 18:17) 두 서너 곳에서 회중이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하였다(고전11:18, 19:32, 39-40). 신약성서에서 교회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존재로서 성도의 모임을 말한다. 또한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우주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이런 개념은 에클레시아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로 이해했다(고전11:18, 14:23)[소기천,“임마누엘 신앙과 공관복음서의 교회론.”, [신약성서의 교회론] 서울; 신약논단 제7, 2000, p124)

(2). 은유를 통한 교회의 본질에 대한 이해

하나님의 백성(9:25-26, 벧전2:9-10)

상기 교회의 어원에서 살펴 보았듯이 교회란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게 된 모든 백성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제도주의적 계급이 없다. Hans Kiing은 특히 이 점을 강조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교회는 온 하나님의 백성이요, 온 에클레시아이며, 온 신앙의 공동체다. 모두가 선택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백성이다. 이 하나님 백성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며 성령에 의하여 성화된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두가 교회 안에서 동등하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백성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멧세지를 통하여 믿고 순종하며 완전한 사랑으로 헌신하라는 요구를 받은 사람들이다라고 하면서 성직자 위주의 그릇된 교회관에 대해 비판하면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이 확정된 것은 3세기 이 후의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 이홍근 옮김,분도출판사,2008, p85-86).

또한 거룩한 공동체란 거룩한 사귐을 말한다. 특히 본질의 면에서 볼 때 그것은 생명체의 유기적 교제를 의미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중생함과 동시에 보편의 교회(혹 본질의 교회)에 참여하게 되며 그가 그리스도의 몸(교회) 가운데 있다는 본질의 사실을 지역교회(유형의 교회)에 가담하여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서 교회의 본질은 기관이 아닌 백성이며, 제도가 아닌 공동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모임의 장소나 건물도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된다. 초기 기독교는 대부분의 모임이 가정(16:5, 고전16:19, 2)이나 노천이나 회당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공동체라고 말할 때는 성령의 공동체임을 기억해야 한다.

한스 큉은 하나님의 부르심은 신앙을 포함한 개인의 모든 행위에 앞서고 하나님의 온 백성을 상대로 하므로, 신자 개인은 결코 혼자서가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존립하며, 나아가 각 개별 공동체도 교회라는 한 공동체 내에서 존립한다. 교회의 출발점은 이렇게 신자 개인이 아닌 하나님이다라고 하면서 교회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며,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이 활동하는 성전이라고 강조한다.(고전3:16-17, 2:17-22) Ibid. p88

성령의 통일케 하심과 다양성에 의해 유기적으로 그리스도의 전체의 몸을 세워나가는 사귐의 공동체이다. 에밀 부룬너(Emill Brunner)교회는 원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성령을 함께 나눈 성도의 친교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고후13:13, 2:1)(서정운, “친교하는 영성복된 말씀 제193, p26) 즉 제도주의나 조직주의가 아닌 카리스마적 공동체라는 점이다.성령의 다양한 은사가 통일성 가운데 나타나는 백성들의 생명적 움직임이 있는 공동체이다.(4:1-12). 제도(모임, 예배, 형식, 시간, 성찬예식, 기도문 등)란 생명적 발휘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지만 교회는 그 성장과 문화적 적합성을 방해하는 제도적 조직들은 개조해 나가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누적된 제도가 선과 악의 혼합을 피할 수 없게 만들며 영적 자발성이나 공동체 생활을 마비시키거나 파괴시키게 된다.

여기에 대해 한스 큉은 "카리스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으로, 교회의 건설(고전14:12, 4:12-13)을 지향해야 하며, 봉사하기 위한 은혜로 삼아야 하며, 사랑이 성령의 첫 열매요, 최고의 카리스마임을 강조한다(고전13 )(한스 큉, 교회란 무엇인가? Ibid. p104)

 

 

그리스도의 몸(고전12:12, 고전10:17, 1:22-23, 1:18,24)

교회에 대한 두 번째 은유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이다. (고전12:12-31, 1:23).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와 생명적 유기체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 안에 여러 은사가 있어서 전체 공동체를 세우고, 풍성하게 하며, 몸의 모든 지체는 머리도시는 그리스도께 의존하고 순종함을 드러내는 것이다(1:15-20, 5:23)

몸은 머리되시는, 생명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라게 되어 있다.

(2:19). “몸의 머리죽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살아나신 분인 그리스도는 성장의 시작이다.(1:18) 몸은 머리르 향해 자란다. 마디마다 머리이신 그 분을 향해 온전히자란다(4:15), 그리스도는 모든 지체가 연결되어 있는 완전한 사람이며 성장의 목표다(4:13). 그리스도의 몸은 내적으로 성장한다. 이것은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 고난의 부족한 것을 마져 채우는그런 고난에 의해 이루어지는, 신앙과 인식과 사랑의 성장이다.(1:24). 그리고 외적으로도 자란다. 이것은 복음의 말씀을 근거로 세례에 의해 연합되는 지체들의 성장이다. 이리하여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분의 충만이다(1:23) Ibid. p112./

이와같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우리 몸이 내적으로, 외적으로 자라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통해 교회는 반드시 자라게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교회는 이 머리에 순종하므로써만 성장이 가능한 것이지 순종하지 않는 교회는 겉으로 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보인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불구의 성장이요, 필경에는 비참한 퇴보임이 드러나고 만다는 것이다.(Ibid. 113)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15-)

진리는 교회를 통하여 전파되며 수호되며 선양된다. 진리란 영원한 진실을 말하는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참 진리이다(14:6). 칼빈(John Calvin)은 교회를 신자의 어머니라고 표현하여 교회를 통한 성도의 신앙교육을 말하고 있다. 칼빈에 의하면 교회의 사명은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이해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성경을 잘 이해시키고,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성경말씀을 실제 생활에 적용시키려고 노력하였다.신복윤, [칼빈의 목회원리] 신학정론 제5, 1987, 5. p450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가르침을 소홀히 하는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명은 물론 교회의 존재의미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거룩한 집(2:19-22)

고전6:19에서는 신자 개인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집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엡2:19-22에는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말하고 있다. 교회는 죄인들이 구성하고 있으므로 거룩하다고 말 할 수 있는가?

한스 큉은 교회의 거룩함이란 신자들에게서, 그들의 종교적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5:27, “거룩하고 흠이 없음이라고 지적되어 있기는 하나 신약성서의 어디에도 거룩한 교회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공동체들을 언급할 때 예루살렘 공동체도(15:25-26, 고전16:1,15, 고후8:4) 이방인 공동체도(1:7, 고전1:2)그 자체를 성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거룩한 나라(벧전2:9)라는 말, 신앙인을 성전의 산 돌이라는 말도 나온다(2:21)...이 교회는 인간들로 구성된 교회이자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교회이다. 죄많은 동시에 거룩하고, 거룩한 동시에 죄많은 공동체다. 죄인공동체가 하나님의 사죄 은총에 의하여 거룩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Ibid. pp139-140

지상에 있는 교회는 구원은 받았으나 여전히 유혹을 받고 있다. 교회에 주어진 거룩함은 교회를 자동적으로 죄없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므로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거룩함을 지향해야 한다.

이 외에도 교회의 정결성, 즉 순수한 신앙을(고후11:2),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기대하는(19:7),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사랑을(5:25-27) 표현할 때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하고 있으며, 교회의 미래의 영광과 하나님과 놀라운 교통을 표현하는 말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4:26, 3:12)이라고 말하고 있다.

 

 

2. 하나님나라와 교회에 대한 이해

(1) 하나님나라의 경륜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개인의 프로그램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과거의 경륜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경륜이 성경계시에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잘 알 때에 그 하나님나라 경륜 속에 들어 있는 교회라는 구성체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면 교회에 대한 바른 파악은 불가능 하게 된다. 왜 오늘날 교회에 대한 이해가 잘 안되냐 하면 본질적인, 즉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나라 경륜을 모르기 때문이다. (1:9, 3:2,9. 1:25, 딤전1:4) 경륜이란 죄로 멸망할 인류를 예수의 속죄사역을 통해 구원하셔서 하나님나라를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큰 계획을 말한다. (이것은 원래 비밀이었는데 하나님이 계시로 믿는 사람에게 보여주셨다고-1:9-10)

 

(2) 하나님나라 경륜 구조 가운데서 교회의 위치

우리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주님의 사역과 교훈을 바로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성서적인 교회관을 가질 수 있다. 교회는 주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처한 구속사적 구간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그의 일을 진행 시키신다.

주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지체들을 이 땅에 두시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사역을 계속 하도록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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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이는 교회로 말미암아...알게 하려 하심이니

(3) 하나님나라와 교회와의 관계

마태복음 16:15-20에서 우리는 교회와 하나님나라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드러내는 수단이다. 고로 하나님나라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에 따라 이 땅 위에 임한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원칙들을 모르고서는 자신의 본질이나 사명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 점에 대해서 하워드 스나이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의 사명과 관련시키지 않고 교회의 전도적 역할이나 예언적 역할을 말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위배되는 것이며 또 교회의 소명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가견적이고 지상적인 표현인 그리스도의 공동체(교회)의 참 모습에서 분리된 복음전도나 사회활동은 그 어느 것도 온전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4) 하나님나라의 비밀의 경륜속에 있던 교회

종말론적인 공동체인 교회는 갑자기 하나님의 구속행위의 수정 보완작업으로 탄생된 것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큰 계획 가운데 예비되었던 일이다. 교회의 자기파악은 하나님나라와 관련될 때 가능하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2:19-3: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미치는 하나님의 통치는 뿌리 깊은 감정들을 회복시키고 거룩한 하나의 교회의 형성이라는 오랫만에 나타난 비밀이었다. 사도바울은 여기에서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바라본다. 교회는 그 자체의 존재 양식으로도 하나님의 구속행위를 높이 드러내게 된다.

 

(5) 교회에 주어진 사명

교회의 사명을 말할 때,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교회의 사명을 인식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은 우주적인 하나님나라의 건설이 그 목적이다.(1:19-20) 만물이 하나님께 화목되어 영광스런 나라를 이루시려는 것이다. 교회도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무릎 앞에 세상을 굴복시키고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천국건설의 필요불가결의 방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즉 기독교의 복음은 개인의 구원과 내세복락에 본래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나라를 우주적으로 회복시켜 나가는 복음인 것이다. 단지 이 일을 위하여 구원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적 사역을 계승하여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자기 위에 계시는 더 크신 왕의 선덕을 드러내는 위치에 있다. 교회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가 잘 드러나도록 하여야 한다. 교회는 왕의 위임을 받아 왕으로부터 하사되는 복을 세상에 공급하여 세상에 거룩한 하나님나라 문화를 건설하여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세상에 증거 하는 삶을 말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선지적 사역을 계승하여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서 그 예언적 기능을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교회는 주께서 가르치신 사상들을 구현하고 증명하며 세상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뚜렷한 징표로서 서 있어야 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을 계승하여야 한다. 교회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적 역할을 한다. 복음을 증거 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서진 모든 부분들을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 결국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켜 하나님나라를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이 그 나라의 목적이라면 교회 역시 그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공동체이다(1:10)

그러므로 교회는 사명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바를 늘 주의 깊게 들어야 하며, 교회의 거룩한 목표를 확실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경륜의 내용을 가장 구체적으로 강력하게 실증하고 표현하며 하나님의 경영을 이루어 나가는 통로가 교회라는 것을 교회 구성원들이 바로 인식하여야 한다. 또한 교회는 그 본질, 즉 하나님나라의 도덕적인 성격을 뚜렷이 드러내는 일에 전력하여야 한다. 교회는 자기가 처한 그 시대의 성격과 도전을 파악하고 사명을 자각하며 항상 성령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한다. 바로 교회는 이 모든 일을 위하여 그 공동체적 성격을 분명히 나타내야 한다. 이런 공동체적인 성격을 확실히 할 때, 교회가 교회되며 그 본질의 성격을 드러내게 된다.

 

(6) 교회가 가져야 할 하나님나라 의식

복음은 개인구원이지만, 금세안심 내세복락 그 이상의 우주적인 하나님나라 건설이라는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자신이 하나님의 광대한 계획속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늘 상기시켜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없을 때, 교회는 이기적이며, 현세적이며, 공리적인 기독교로 타락하여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의 질이 없는, 사명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역사 속에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지므로 교회 역시 자신이 처한 그 시대의 사명을 늘 자각하여야 한다. 뿐만아니라 하나님나라는 그 열매 맺는 백성에게 주어진다. 교회는 무엇보다 그 숫자가 많으면 많은 만큼 하나님나라의 열매를 풍성히 내 놓아야 한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문화를 건설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교회는 그 자체의 모습으로도 거룩한 하나님나라의 찬란한 문화를 지어 나가야 한다.

2 절 목회의 본질

1. 목회란 무엇인가?

(1) 교회의 본질에서 목회를 이해함

오스카 쿨만(Oska Cullmann)은 구속사적 종말론의 관계에서 이미 이루어진 구원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 사이에서 나타나는 작업을 목회라고 정의했다. 트루나이젠(Thurneysen)은 목회를 복음 전달에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 개개인을 접근하고 이를 이해하고 보살피며 신자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수고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로보건데 목회란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인적으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되도록 섬기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왕적사역과 선지적 사역과 제사장적 사역을 계승하여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위한 성숙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숙한 교회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그 대답은 한마디로 제자훈련이다. “제자훈련은 작은 예수 만들기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온전해 지면 생활도 온전해 진다고 믿는다. 목회의 본질은 제자 훈련이다.”(옥한흠,[리더십 쉬프트], 국제제자훈련원, 2001, pp13-14) 다음의 지상명령과 제자도에서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예수님의 지상명령과 제자도

그레그 옥덴은 우리 문화의 문젯거리는 낙태찬성론자도 아니다. 포르노 제작자나 마약판매자 또는 범죄자들도 아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 말하면서, 실상은 훈련이나 제자, 순종도 없고, 성경도 모르는 교회이다고 말한 칼 토머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늘날 영적 무력증에 빠진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은 현대의 신앙인을 지적하고 있다(제자도, 그레그 옥덴, 박규태 옮김, 국제제자훈련원, p36.) 그는 또 성경은 교회를 꼭 필요한 유기체, 택함 받은 유기체로서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몸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오늘날 실상을 보면, 사람들은 교회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단체이지, 제자도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 한다”( Ibid. 49.)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서 눈을 돌릴 때, 교회는 곧 병이 들어 버리고,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지 않게 되며, 사명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주님의 제자의 길이란 바른 교회관을 가질 때 보여 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지상명령(28:19)이 교회에 주어졌으나, 우리는 교회의 본질을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제자도를 깨닫게 되고, 제자도를 깨달을 때, 성경적인 목회철학이 형성되며,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이며, 그들을 성숙케 해서 주님의 제자로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임을 절감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P.T 찬다필라는 그의 책 예수님의 제자훈련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의 목적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첫째 관심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줌으로써 둘째 아담으로서 인류의 구속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주님의 두 번째 관심분야는 이 구원의 메세지를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신실히 전파할 소수의 사람들, 즉 열두 제자를 택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 주님은 위대한 전략가였다.” (P.T 찬다필라, 예수님의 제자훈련,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1985, p7)고 그의 책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크게 두 가지로, [구속사역과 훈련사역]이라는 말이다. 덧붙여 위대한 훈련자 예수님의 인격의 8가지 자질이 주님의 제자훈련에 관한 연구의 중심이 되지 않을 때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Ibid. p9)

그가 주장하는 것은 교회가 구원사역과 더불어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여 예수님의 인격을 꼭 닮은 제자를 만드는 것, 즉 훈련사역이 가장 중요한 사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구속사역과 훈련사역으로 압축해 볼 때, 예수께서 구약시대부터 예언되어 온,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므로 구원의 길을 여신 것과 예수님께서 남은 사역을 제자들을 훈련시켜 맡기시고 승천하셨는데, 이 둘 중 한 가지(제자 훈련사역)을 소홀히 할 때,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지 않은 것으로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제자훈련의 대가인 옥한흠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모든 믿는 자들이 제자 곧 완전한 자가 될 수 있도록 크게 세 가지를 주셨다. 첫째는 성경을 주셨다. 둘째는 교역자를 주셨다. 그리고 셋째는 모델을 주셨다. 하나님이 교회에 성경을 주신 것은 첫째, 믿지 않는 자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요, 둘째는 믿는 자들로 온전케 하려 하심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이 예수 닮게 하시려고 말씀을 주신 것이다.”(옥한흠. “이것이 목회의 본질이다.”2004. 국제제자훈련원,p71). 고 말한다.

필자는 두 분의 말이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누구라도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을 가만히 살펴보면(4:23, 9:35), 예수님의 사역이 가르치며, 전파하시며, 치유하신 것으로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 살펴보면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 그리고 교회를 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말로, 우리 몸이 머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에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지상사역을 교회에 위임(28:19)하셨으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에 의해 제자도를 이해해야 되는 데,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 하는것, 제자를 삼아 성도를 온전케 하는(28:19, 4:11-13), 훈련사역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물론 건강한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 새벽기도, 금요기도회에 등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인가? 아니면 찬양이 살아있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 성도들이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잘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가? 이 모두가 건강한 교회의 모습의 한 단면일 수 있으나, 그 한 단면을 가지고 건강한 교회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십일조를 가르치면서, 십의 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았고, 주일 성수를 가르치면서도 한 주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으므로 교회에서는 거룩한 성도이나 교회 밖에서는 불신자와 구별이 안되는 것을 보게 된다. 성도들에게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의 질이 없고 삶의 원칙도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그야말로 맛을 잃은 소금이요, 빛을 잃어가는 등불처럼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이 아닌가?

 

건강한 교회란 한마디로 말해서 성도들이 말씀을 배워 주님의 뜻을 깨달아 머리되시는 주님께 잘 순종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 것이다. 뇌에서 명령하는데 몸이 따르지 못하면 그것은 장애자임이 분명하다.

한스 큉도 말하기를 교회의 머리이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교회는 겉으로 아무리 분주하게 활동한다 하더라도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축한다. 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보인다 하더라도 필경에는 그것이 비참한 퇴보임이 드러난다.( 한스 큉 p113) 고 했다.

옥한흠 목사는 제자도를 설명하기 위해 교회의 본질을 말하면서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교회의 본질을 세상과 구별된 거룩성,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통일성, 시대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라는 보편성, 이 세 가지를 말하면서 케톨릭의 영향으로 한 가지를 놏쳤는데, 한스 큉이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것이 바로 사도성이다. 사도성은 요한복음20:21, 2:20에 근거한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가 거룩성, 통일성, 보편성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사도성이 없으면 그것은 성경적인 교회가 아니다. ”pp 50-51)고 말하면서 이것이 목회의 본질이라고 했다. 필자도 이것은 교회의 중요한 본질이라고 믿는다.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으며,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의 공동체라는 본질이 바로 교회의 사도성이다. 사도는 주님으로 보냄받은 자 라는 뜻이며 사도들로부터 생겨난 전 세계 교회의 성도 역시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자라는 개념이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것이 제자도요,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변해야 삶도 변한다. 사람이 변한다는 말은 그 사상이 변한다는 말이다. 공산주의 사상을 품고 있으면 언제든지 공산주의자의 삶을 살게 된다. 도둑의 사상(탐욕)을 품고 있으면, 기회만 주어지면 도둑질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기뻐하는 어린아이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로 성숙해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린아이 때에는 자전거 사주세요! 축구공 사주세요, 야구 빠타 사주세요, 그래서 자기의 욕구를 채워 주시는 아버지로 만족한다. 그러나 나이가 30이 넘어서도 그런다면 얼마나 철 없는 행동인가? 아버지 덕이나 볼려고 하는 공리적인 사상을 버리고, 나는 망해도 주님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소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의 사람으로, 주님의 제자로 세워져야 한다. 사람은 가르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변질이 된다. 변화는 말씀을 통한 훈련 밖에 방도가 없다. 이것이 목회의 본질이요, 제자도인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사역자들이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옥 목사가 외치는 한사람 목회철학! 한사람을 세우기 위해 목숨을 건다면, 하나가 천이되고 만이 될 것이라는 겨자씨의 생명의 역사를 (이사야60:21,22) 믿고 나간다면, 이 척박한 일본 땅에도 복음의 계절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본질적인 목회사역

Ray S. Anderson은 목회의 본질을 언약과 창조속의 하나님의 사역으로 보고 새로운 목회적 관점(신학적 과업으로서 분별과 혁신, 프락시스로서의 사역)에서 제시하고 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여받은 사역은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하는 것이며, 사도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사역-역사적 그리스도의 사역(성육신적), 부활하시고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말씀 선포적),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종말론적)과 선교적 공동체로서의 사역(선교는 교회에 선행하고 교회를 창조한다. 즉 교회는 세상에 대한 선교사명의 결과이다), 죄 사함과 치유의 성례로서의 교회사역, 그리고 학대받는 자와 억눌린 자들의 보혜사로서의 교회사역-말씀의 사역, 가르침의 사역, 보혜사의 사역 등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엔더슨은, 선교신학은 우리가 하나님나라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다스리심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향해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와 역사 속에서 이미 있었던 것들을 연결하는 신학적 과제를 등한히 여겨서는 안 된다. 바울은 1세기의 어떤 신학자보다도 그 일을 많이 해냈다.

 

그러나 그 과제는 현재 행해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지니신 선교사명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하는 신학적 과제를 뒤따라야 하며, 그 선교사명은 교회에 선행되고 교회를 창조하는 것이므로 하나님나라의 권능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고 정의 했다.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사명에 대하여 강렬한 비전이나 현실적인 참여가 없이 교회는 진정한 신학을 가질 수 없다는 말처럼 엔더슨은 사도적 절대 사명인 선교에 대한 신학적인 재정립을 하게하며, 복음과 사도적 절대사명에 입각한 목회사역을 하도록 중요한 원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리스도의 사역 안으로 이끌도록 하는 목회원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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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교육목회학] (서울: 솔로몬,1997) pp.108-109

레이 엔더슨/강성모 역, 새 천년을 위한 영성 사역. 171

하나님나라는 많은 사람을 통해 계승된 것이 아니다. 성경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계승 된 것을 보게 된다. 그레그 옥덴은 예수님은 왜 소수의 인원에 전력 투구하셨는가? 라는 질문과 함께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택하신 전략적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내면화와 제자 수의 증가였다. 예수님이 소수에게 초점을 맞추신 것은 그것만이 자신의 마음과 사명을 핵심 제자들의 삶 속에 옮겨 심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면화는 청중을 상대로 한 대주 전달의 방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그것은 인격대 인격이 만나는 정황 속에서만 일어난다. 진정한 제자의 증가, 또는 제자의 재생산 역시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명을 자신의 내면에 새겨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려는 마음을 품게 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는 것이다. (그레그 옥덴, [세상을 얻은 제자도],국제제자훈련원, 2007, p119.)

그는 이어서 제자도는 곧 그 분을 아는 것, ‘그 분을 사랑하는 것, ‘그 분을 믿는 것, ‘그 분에게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며, 예수님은 1단계에서 삶으로 본을 보여 주시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관찰하면서 그 분의 말씀사역을 흡수하기 시작했으며, 2단계에서는 제자들을 자극하며 가르쳐, 새 나라의 시각을 열어 주시므로 하나님께 반역한 종교적 세속적 세계에서 제자들이 받아들였던 사고와 전제들을 제거하는데 교육목적을 두셨다. 3단계에서는 제자들을 뒷받침하는 코치가 되셨고, 4단계에서는 마침내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위임자 역할을 하고 계신다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준비시켜 권한을 부여하신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 양육을 그대로 이어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목표로 보았다고 말하면서 골1:28-29절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가서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메아리치는 것이 들릴 것이라고 한다.( Ibid. p161)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 하노라(1:28-29)

같은 맥락에서 옥 목사는 각 사람위해 생명을 거는, 수백 명이 아니라 한 영혼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이 목회자의 양심이라고 말한다. 옥 목사는 교회라는 개념은 첫째 택함 받은 자의 모임(고전1:2)이며, 둘째, 그리스도의 몸(고전12:1·3), 셋째, 성령의 전(고전3:16)이라는 3가지 기본 개념을 토대로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 이며, 바울의 관심은 바로 각 사람이라는 평신도에게 있었음을 강조한다.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이다. 평신도 한사람을 위해 생명을 걸라! 교회는 평신도의 교회다. 목사 역시 이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목사의 할 일은 평신도가 제 자리에 서서 제 역할 하도록 헌신하는 것이다. 평신도가 목회의 주체인데, 목회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숫자가 많은 한국교회가 사회 앞에서 오합지졸로 변해버린 이유라고 변증하고 있다. (옥한흠.[이것이 목회의 본질이다] 국제제자훈련원,2009, pp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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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d, 182

Ibid, 183

 

우리는 그레그 옥덴 목사와 옥한흠 목사의 목회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분명한 것은 평신도가 목회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라는 것과 이 평신도 한사람 각 사람을 위해 생명을 거는 것이 목회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3 절 목사는 무엇을 하는 자인가?

1. 성경적인 리더십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면 자동적으로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교회에 리더십이 없는 지도자가 서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무엇보다도 교인들이 목적 있는 삶을 살지 못하므로 방황하게 되며, 교회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불화가 그치지 않으며, 지도자는 결국 지치게 되고 교회는 병든 나머지 영적 무기력 증에 빠져 조직과 제도 속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지만 사명을 잃어버리고 교회의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교회가 본질적 목적에서 벗어나 존재 의미를 상실할 때에 누구의 책임인가? 교인의 책임인가? 하나님의 책임인가? 그 책임은 공동체와 사역을 위해 부름 받고 위임 받은 지도자가 가져야 할 몫이다.

우리는 지도한 사람이 바른 리더십을 가질 때 하나님의 교회가 건강해 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기에서는 몇가지 성경적인 리더십에 대한 이론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리더십이란 비전을 제시하는 업무(Envisioning task)이며 모델을 만드는 업무(modeling task)”라고 말한다.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어떻게 지도자가 공동체에 비전을 제시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에 있어서 비전이란 최고의 덕목이며 생명이다. 또한 리더십은 조직을 하나의 유기체로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업무를 수행해 나가는 기능이며 조직의 공동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추종자들을 하나로 나아가게 하는 역량이다. 그는 또 리더십의 권위를 LeadershipHeadship 으로 설명하면서 리더십은 권위를 요구하지만, 헤드십은 권위적인 사람을 요구한다그는 또한 칼빈의 교회는 훈련이다는 말을 인용, 훈련을 통해 권위를 회복하고 추종자들에게 공동의 목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된 리더십 이라고 주장한다.(옥한흠외 3. 리더십 쉬프트. 국제제자훈련원, pp45-51)

P.T. 찬다필라는 훈련자의 인격(the Master Trainer)에 초점을 맞추고 그리스도의 인격(그리스도의 자질을 8가지로 나눔)이 주님의 제자훈련에 관한 연구의 중심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구속사역(redeeming work) 과 훈련사역(training work)으로 말하면서 지도자는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변화되는 훈련이 앞서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성육신(incarnation)과 동화(identification)라고 말한다. “지도자 훈련의 첫단계로서 훈련자는 자기 스스로 다리를 놓아 장애물을 건너서 피 훈련자의 수준에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고상하고, 도달하기 어려운 생각들이나 경험들이 추종자들의 수준과 그 사람이 접근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옮겨져야 한다. 왜냐하면 성육신이 없이는 훈련자와 피훈련자 사이의 접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접촉이 없다면 훈련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육신의 뜻을 적용할 때에만 훈련의 기초는 설 수 있다고 말한다(P.T. 찬다필라, 예수님의 제자훈련, 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1985, pp4-16

그는 요11:17-43을 들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동화된 깊이와 높이를 가르쳐 준다고 말하면서 동화란 제 삼자가 보았을 때,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할 수 없을만큰 연합하는 것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혹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같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 한다.( Ibid. p19)

같은 맥락에서 달라스 윌라드는 그의 책 잊혀진 제자도에서 리더가 해야할 일은 첫째로, 나를 고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와 세상을 고치고 싶다면 나 자신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세상을 고치거나 어떤 종교기관도 개혁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다만 그 분은 우리가 그분으로 충만해지면 땅끝까지 이르러그 분의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다(1:8). 그러므로 나의 첫 걸음은 그 분의 제자가 되는 것이고 지금 하나님나라 안에서의 나의 삶-진짜 삶,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삶-을 사는 법을 그분께 배우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변화 시키려는 당신의 생각과 노력이 예수와 동행하는 제자도의 실천보다 앞서거나 그 자리를 차지하게 두지 말라는 것이다. 제자도가 항상 당신을 선점(先占)해야 하며,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결과가 당신의 주변들에게 직접 증인이 되어 강력한 영향 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확실한 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달라스 윌라드, [잊혀진 제자도], 윤종석 옮김, 2007, pp271-275)

 

 

찬다필라달라스 윌라드의 이론을 생각해 볼 때, 리더십에 있어서 무엇보다 비중을 크게 두는 것이 지도자의 인격이라고 보는 것이다. 필자가 한 때 자칭 제자훈련에 달인이라고 하는 사람에게서 크게 상처를 받은 일이 있다. 그는 남다른 말재주와 설득력이 있으나, 인격이 따라주지 않으므로(진실치 못함)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결국 예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닌, 자기의 제자를 만드는 사례를 보면서, 한 때 제자훈련에 대한 회의를 느낀 적이 있다. 지도자 자신이 주님을 닮은 제자가 되지 않으면, 진정한 리더십은 발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쉽게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고덕한 목사는 두 분과 같은 맥락이면서도 좀 다른 각도로, 체질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먼저 지도자의 체질이 예수님에 의해서 변화된 예수의 체질이 되어야 한다. 전통적 목회자의 체질에서 제자훈련적 체질로 바뀌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제자훈련 목회의 중요한 요소로 4P로 정리를 했는데, 첫째, Paradigm(목회철학-교회론/평신도를 깨운다,1,2,3), Person(제자훈련자-자질론/예수님의 제자훈련-찬다필라), Principle(제자훈련 원리론/평신도를 깨운다 4, Program(제자훈련 방법론/제자훈련,사역훈련 교제) 정리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찬다빌라의 이론, 성육신과 동화를 인용하면서 지도자가 먼저 변해야 하는데, 체질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는 사람만 변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훈련가적 체질은 위대한 훈련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서를 통해서 부단히 바라보는 가운데, 지속적인 훈련(on the job training)과 시행착오(try & error)의 원리에 의해서만 형성된다. 구세주 예수의 보혈의 복음으로써 온 세계에 나아가 열방을 제자삼기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는 마침내 제자훈련가이신 예수의 피가 자신의 혈관 속에 흐름을 느끼게 되고 어느덧 예수 체질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옥한흠외3, [리더십 쉬프트], 국제제자훈련원,2001, pp.85-98, 107)

 

필자는 이제 리더십 다이아몬드 모델을 소개하고 성경적인 리더십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2) 성경적 리더십 모델

김덕수교수는 예수님의 리더십을 말하면서 변혁적 리더십을 주장하고 있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과거를 답습하고 거래를 통해 현재를 관리하는 데에 그치지말고 성경이 그리는 그 이상을 실현 내라. 그것이 진정한 변혁 지도자의 삶이다고 말하면서 한 목회자의 리더십이 가장 심오하게 나타나는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자신을 바꿀 때다. 지도자가 변화되고 지도자의 삶에 일어나는 변혁을 볼 때 다른 사람들(교인)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의 삶에(개인차원) 변혁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삶에(공동체 차원) 변혁을 일으키는 자, 그가 진정한 지도자다고 말한다. (김덕수, 리더십 다이아몬드, 서울;두란노, 2008, pp37-38) 이어서 성경적 리더십을 하나님, 지도자 자신, 구성원, 상황 의 4가지 관계성으로 보고, “지도자와 하나님과의 관계성, 지도자 자신과의 건강한 관계성, 구성원과의 관계성, 그리고 지도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의 관계성을 만들어 가는 것으로 리더십이 표현된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지도자를 선물로 주신 이유는 성도들이 충분히 깨닫지 못하는 그들의 은사와 사명을 잘 활용하도록 도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십은 하나님과 성도 간의 살아 있는 관계성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참된 지도자이며 훌륭한 지도자인가? 그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냐에 대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섬기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Ibid, p41)

또한 그는 목회자가 자신의 야심에 따라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추구하도록 도울 때에 그를 성경적인 지도자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영적 리더십과 세속적 리더십의 차이에 대해 영적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지만, 세상적 지도자는 자신의 야망과 의지에 의해 움직인말한다. 그는 써번트 리더십을 감조 하면서, 써번트 리더십은 섬김이 무엇인지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출발하며 그것은 첫째, 사람들을 더 나은 미래로 인도하는 비저너리(visionary)가 되는 것이고, 둘째로, 따르는 자들의 은사와 능력을 개발해 성숙을 일으키는 자가 되는 것이며, 셋째, 일꾼을 세워 권한을 부여하고 위임하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고, 넷째로는 공동체를 위해 인적,재정적,물리적 자원을 마련하는 것이고, 다섯째로는 따르는 자들 안에서 차기 리더를 재 생산하기 위해 가진 역량을 쏟아 부어 섬기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변혁적 리더십 즉, 다이아몬드 리더십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첫째는 비전(vision), 둘째는 Being, 셋째는 Doing,넷째 문화, 그리고 그 가운데 기도(믿음,용기)로 표현하고 있다

 

(3) 변혁적 리더십

이 네가지를 차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첫째로, 변혁적 리더십의 비전에 대해, “비전이 없으면 공동체는 공동체는 방황한다.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는 두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다. 첫째는 그가 속한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비전)를 제시하고, 둘째는 동기 부여하고 설득하여 공동체가 그곳으로 가도록 돕는 것이다. 지도자는 비전을 분명히 함으로 공동체의 존재 이유와 움직여 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비전의 리더십의 나침반이라면, 가치는 리더십의 출발점이다. 즉 비전이 중요하지만, 비전을 예기하려면 먼저 가치관이 확고하고 가치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성경적 가치관부터 분명히해야 한다

둘째로 변혁적 리더십의 Being 에 대해,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변혁적 리더십의 기초를 단순히 능력이나 원활한 인간관계보다는 신뢰성 이라는 것에 두고, 신뢰를 쌓아가는 방법을 3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진실을 말 하는 것, 둘째는 지더자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것이요, 셋째는 리더는 좋을 때 뿐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에도 신뢰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역량(Doing)도 필요하지만, 인격과 성품과 내면(Being, 목회자라면 영성까지) 있어야 하고, 그의 행동은 믿음과 생각과 말이 일치하여 믿을만 하다는 평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신뢰를 잏고 아무도 진정으로 따르지 않게 될 것이다.(Ibid, 118, 124, 135)

즉 영향력 있는 리더십을 위해 필요한 평판은 신뢰성과 영적 성숙에서 온다는 것이다.

셋째로 변혁의 리더십 Doing에 대해 임파워먼트(empower-권한을 부여하다, 능력을 부여하다 는 뜻)를 말하면서, 지도자는 구성원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하게(enable)해 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리더의 임무는 지도자 역할만 훌륭히 수행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꾼 육성에 할애하는 것이다.(예수님의 삶도 그랬다).

그는 워렌 베니스의 말을 인용 해,“리더십은 힘의 행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능력을 불어 넣는(empower)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성경적 리더십의 한 측면은 임파워먼트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넷째로 변혁적 리더십 문화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리더십에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비전을 현실화 시키지도 못하고, 그 발을 현실에 딛지 못한 채 구름 위의 사역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문화란 무엇인가? 웹스터 사전은 생각, 언어, 행동과 유산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행동 양식에 내재된 것이라고 정의 한다. 인류학적 관점으로 볼 때, 현재 있는 곳의 관습에 영향을 받고 바뀌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가족, 조직, 민족과 나라는 각각의 문화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며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사실 신학적인 문제 보다는 문화적 차이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당신이 한 공동체의 지도자라면, 항상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하며(문화적 근거),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하며(현재 문화에 대한 분석), 또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이며 그 때 우리와 함께 가게 되는 성도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건지 알고 대처해야(문화변혁) 한다. 지도자는 현 문화를 비전까지 끌고가야 한다. 그런데 문화는 변화를 거부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때로 파라다임 전환을 필요로 한다. (Ibid, pp.118-166)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리더십의 모든 기술을 다 갖추었어도 결국 영성이 없고 내면이 메마른 사람은 오래갈 수 없다. 시들어 말라 죽거나, 영성이 없음으로 세상의 힘으로 권세를 삼아 사람들을 다스리려고 드는 삯군으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Ibid, p.398)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적인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리더십의 본질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찾아야 하며, 그것은 섬기는 리더십으로 리더 자신의 야심에 따라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주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사명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기 위해 섬기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특히 문화나 상황에 쉽게 젖어 저리는 것이 아니라 변혁적 리더십을 가져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의 Being(인격, 체질, 목회철학 등)이 가장 중요함을 알았다. 그 모델로 변혁적인 리더십을 살펴보면서, 교회가 활성화 하려면, 문화를 초월해서 지도자가 변혁적인 리더십으로 패러다임이 바꾸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과 지도자 한 사람의 리더십이 교회의 활성화에 얼마나 크고 중요하게 관계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지도자는 찬다필라가 말했듯이 예수님의 구속사역과 훈련사역”,그리고 성육신과 동화에서 지도자 자신(Being)을 살펴보고 변혁적인 리더십을 갖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며, 실패한다 해도 낙침하지 않고 차세대 지도자를 선별하고 개발하는 제자훈련 사역에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교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변혁적인 리더십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사료된다.

2. 영적리더의 비전과 역할

하나님나라를 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서 쓰임받는 영적 리더로서의 목사는 자기목표를 이루려고 사람들을 이용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이 곧 그들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영적 리더가 하나님께 받은 책임은 최선의 노력으로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느냐 못지않게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나라에서는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성공적 리더십의 열쇠는 인생에 없는 시간을 만들어 내거나 하루 일과에 더 많은

활동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헨리 블랙커비는 영적리더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정직성이라고 강조한다.

카우지스와 포스너는 미국 전역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연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리더의 특성이 무엇인지 물었다.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수위를 차지하는 특성은 바로 정직성이었다. 사람들은 리더의 정직성을 비전, 능력, 업적, 감화력보다 더 중시했다....리더십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리더를 따르기 마련이다. 리더를 믿을 수 있으려면 기초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초가 정직함이다. 또한 리더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궁극적인 테스트는 언행일치 여부다...... 사람들이 리더에게 기대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정직함이다."

정직성에 대한 강조는 영적 리더십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공인의 삶을 사는 리더는 보여 지는 모습이 곧 삶이 된다.”

헨리 블랙커비는 영적 리더십은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고 요약하고 리더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즉 영적 리더는 사람들을 움직여 현재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가게 하는 것이다. 영적리더는 성령께 의존해야한다. 영적 리더는 하나님께 책임진다. 영적리더는 하나님의 사람들뿐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영적리더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 한다는 다섯가지의 리더의 역할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모본은 그분의 방법론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버지 뜻에 대한 그 분의 절대적 순종에 있다......예수님이 제시하신 영적 리더십의 열쇠는 리더가 자기 조직의 비전을 만들고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계시하신 모든 뜻을 잘 간직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리더는 하나님 아버지다. 하나님이 하시려는 비전은 그 분 자신께 있다.하나님은 리더들에게 당신 대신 큰 꿈을 꾸라거나 당면한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다만 당신과 친밀하게 동행할 것을 요구 하신다.

헨리 블랙커비/윤종석역, 영적리더십,(두란노,2003)p132

Ibid, pp132-133

Ibid, pp35-39 Ibid, pp45-46

 

 

이상을 살펴보면서 목사는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사역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해야 하므로 무엇보다 영적 분별이 필요하다.

 

엔더슨은 섬기는 자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는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 사람들의 비전에 대해, 그것이 지닌 사명에 관해 현실적인 해석을 가함으로써 분명하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뜻으로 이끌어 주는 약속과 함께 같은 방향으로 맞추어져 있어야 하며, 그 약속을 계획하는 모든 과정 속에 포함시킨다.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는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는 사람에게 약속과 비전과 목표들을 완전히 밝힘으로써, 그들을 계획하는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만들어 준다.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는 다른 사람들에게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도록 하고, 계획을 세우도록 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은택과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그들 자신의 실패로 인해 넘어지고 낙망하는 사람들이나 삶의 과정 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해 보혜사가 되어준다.라고 리더의 역할을 정의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영적 리더는 종들로서 섬김의 리더십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수님은 지도력을 새롭게 정의하시면서, 세상 리더들과 달리 영적 리더는 권세를 부리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종으로서의 지도자의 개념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전통적인 개념을 뒤집는 혁명적인 개념이었다.뿐만아니라 예수님은 왕이시면서 나귀 새끼를 타셨고, 십자가에 달리심등의 희생을 통해 친히 본을 보이셨다.

섬기는 자로서의 목회자가 소유해야할 요소들은 감동을 주는 창조적 비젼,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하는 위임받은 능력, 그리고 목회를 위한 영적 은사이다. 비전능 통한 섬김을 실천하는 리더십을 소유한 자로서의 목회자는 조직의 욕구나 목적들에 굴종되어서는 안 되며, 그 조직의 사명을 위한 종이어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위한 종이다고 리더십을 정의하고 있다.

 

3. 바른 목회사역을 위한 제안

(1)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어라

교회는 조직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이므로 조직과 제도 중심의 교회구조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유기체적인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의 전통적인 역할(목회자 중심)이 성도를 세우는 (평신도 중심의 목회사역) 역할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옥덴교수는 교회의 조직과 제도는 유기체의 발휘를 위해 참으로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조직과 제도 중심으로 나아갈 때 교회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새로운 교회개혁은 교회를 무력하게 만드는 우리의 옛 사고방식 대신 그 자리에 사역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능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목회비전을 품은 영적 전투라고 단언한다. 의존사역모델(목회자 중심)은 의존적 성도들이 필요로 하는 정서적으로 병든 목사를 만들어 내며, 교회의 발육은 멎고 성도들은 심각한 영적 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평신도 중심의 바람직한 모델은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하여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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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엔더슨/강성모 역. 새 천년을 위한 영성사역(나눔사.1999)p225

22:25-26

Oden, Greg,송광택 역. 새로운 교회개혁 이야기. (서울 미션월드 라이브러리.2000)pp225-232

Ibid. pp184-185

 

목사가 할 일은 무엇인가? 트루불러드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명쾌한 답변을 주고 있다. “사역은 그리스도의 삶을 함께 나누기 위해 부르심을 입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목사는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다.

달리말하자면 목사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구비시켜 주고 배치시켜 주기 위해서이다... 목사들의 존재 이유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들의 사역을 온전히 행할 수 있도록 살리고, 목사는 대신 자신의 사역을 죽이는 데 있다. 따라서 오늘날 재 발견된 목사의 역할은 목사의 돌봄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개인적인 은사를 통하여 공동체에 힘을 불어 넣어서 사역을 위한 각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레그 옥덴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목사의 의존적 모델 사역에서 평신도로 구비시키는 상호 의존적 모델로 전환, 목회자는 코치로서 전 교인을 목회에 참여하게 함으로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데 참으로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바른 목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목사의 의식이 변해야 된다고 생각된다. 옥덴의 평신도 사역에 대한 강조는 목사의 바른 목회철학을 정립하고, 바른 목회 사역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2) 지도자의 영성을 개발하라

영성이란? 한마디로 주님께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이 영적인 삶이요, 그런 자세가 있는 사람의 속성이 영성이다. 헨리 나우웬(H. Nouwen) 은 영적인 삶을 가장 깊숙한 자아로, 동료 인간들에게로, 그리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발돋움(reaching out)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해 다가서는 모습이 영적인 삶이다.(다이아몬드 387)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영성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Yes No를 잘 해야 할 것이다. 비본질적이고 덜 중요한 일에는 No 함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음성에는 Yes로 응답해야 한다. 예를 들면, 경건생활(Q.T)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에 긴급한 일들과 부딪히게 되면 이런 일들은 뒤로 밀쳐지게 되고 긴급한 일들을 따라다니게 된다. 건강관리도 마찬가지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20-30분 운동을 정기적으로 한다는 것도 경험해 보면 그리 쉽지 않다. 가정과 교회와 노회등의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고 중요한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면서 말씀 연구하는 일, 기도로 주님께 나가는 일, 사람을 세우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3) 한 사람을 세우는 일에 목회생명을 걸어라!

교회의 본질과 사도적 사명을 계승한 교회의 사명을 분명히 하고 평신도 한 사람을 사역과 목회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 한 사람! 제자훈련에 생명을 걸어야 할 것이다. 옥한흠 목사가, 바울이 골1:28-29각 사람에 세우기 위해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는 바울의 목회의 원형을 말하면서,“ 평신도가 교회의 주체입니다. 평신도 한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거십시오!”라는 외침이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제자훈련의 한 사람 철학을 가지고 목회의 본질에 충성하면 주께서는 환경을 초월한 기쁨의 열매를 주실 것이며, 작은 자가 천을 이루리라(이사야60:21,22)는 비전에 기름을 부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

 

 

 

4절 사역을 위한 실천신학

 

1. 목사의 역할은 평신도 중심의 구조개혁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교회가 정체되는 근본원인은 단 한 가지 교회의 세속화 때문이다. 그리고 높아지고자 하는 지도자들의 교만이 가장 먼저 교회에 세속화의 바람을 불러 들였던 것도 부인 할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다. 일본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조직과 제도 중심의 교회구조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유기체적인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야한다. 또한 목사의 전통적인 역할이 성도를 세우는 겸손한 자의 모습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또한 평신도들 역시 지도자들로부터 받기만 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는 주어진 은사에 따라 적극적으로 그 역할 을 수행해야 한다.”(‘새로운 교회 개혁이야기의 미션월드 발행인 강안삼씨의 글에서 인용한 것임)

가장 중요한 관건은 목회자의 의식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성직계급으로부터 해방시킨 '만인제사장이란 의미는 모든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간다. 우리는 모두 제사장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직접 그 직무를 수행한다”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사역을 담당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지고 있다. 사역은 전문적 지도자들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부패한 세상은 죄의 결과로 인한 수많은 고통과 맞서 싸울 부름 받은 군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바로 평신도들이 사역자들이며 하나님이 세상을 고치시는 역사에 동참하는 사랑의 도구들이라는 기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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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gden.op.cit. pp125-127

Ibid. pp16-28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성경은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1:22)라는 표현 가운데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다. ‘머리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그것은 생명의 원천과 궁극적 권위라는 의미이다...영적으로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적으로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그들의 성장 목표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체들의 성장 목표가 되는 머리이며 동시에 지체를 성장시키는 머리이다...(4:11-13)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가 참 포도나무요 우리가 가지들이라고 하는 말씀의 요점이다(15:1-11)

 

옥덴은 교회개혁을 강조하면서 목사의존적 모델과 평신도를 사역자로 구비시키는 상호의존적 모델을 비교하면서 교회를 (조직체가 아닌) 유기체로 보고 사역을 전체 몸이 해야할 일로 본다면 목사는 실제사역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 몸으로 하여금 완전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존재다라고 목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2. 사람을 세우는 제자훈련이다

하나님나라와 교회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조직적으로 관리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예수님의 왕적, 선지적, 제사장적 사역을 계승하여 세상에 거룩한 하나님나라의 문화를 건설하는 사명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은 목회사역의 본질이며, 여기에 목사는 생명을 걸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 하워드 스나이더는 해방된 교회라는 그의 책 마지막 장 제자를 만드는 목사에서 제자를 만드는 일이 목회자 사역의 가장 기본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3. 사역을 위한 준비

나에게 목회철학과 분명한 비전이 있는가? 자신의 영적, 지적 발전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가? 교회의 이중구조를 바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평신도 지도자를 양육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은 있는가? 목회자의 목회철학, 비전을 평신도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목회자의 신뢰도는? 등의 질문을 자신에게 하면서 평신도들의 은사를 개발하도록 돕고, 교회가 명확한 비전과 가치관을 갖게 하며, 영감 있는 예배를 위해 지도자가 먼저 예배 자가 되어야 하며, 제자훈련을 통해 소그룹을 활성화 하고 지상명령인 선교에 순종하는 교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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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d. pp42-43

Ibid. p153

Ibid. p165. 재인용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와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이해, 성자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이해, 성령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예수님을 대신한 세상을 향한 교회 사역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목회자로서 우리는 사람의 필요를 섬기기 위해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기 위해 부름 받았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생명적 유기체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경륜 가운데 있으며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 사명을 위해 존재하며, 목회자는 목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여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위해 군사로 부름 받은 평신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위해 주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해야 할 것 등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목회 사역에 대한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기초를 확고히 하고 소그룹 제자훈련을 통해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비전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